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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산문명과 한민족의 형성

 

"B.C.4000년경 환웅족은 백두산 천평지역을 도읍으로 삼아 요동 천평지역과 요서 청구지역을 배달국의 동·서 양대중심으로 삼아 청구·천평·흑룡강 일대를 두루 경영하였다. 천평 권역은 백두산의 동서북 산록 일대에 대한 지칭이었으며, 그 구심은 배달국 으뜸 소도제천지인 백두산 신시(神市·신불·신밝)였다. 백두산 소도제천지는 본질적으로 제천을 통해 사람 속의 '밝음'을 살려내는 선도수행처였고, 이러한 전통은 고려시대까지 이어졌다. 배달국 천평 권역 최고의 소도제천지가 백두산 신시였다면 중심 도읍지는 신주 또는 비서갑으로 현재의 통화시를 중심으로 하는 통화일대로 비정된다. 천평으로 이거해온 환웅족은 토착세력 웅족과 혼인동맹의 방식으로 연맹하였고, 웅족의 환웅족화가 진행되면서 배달국의 주족인 맥족(환웅족+웅족)이 형성되었다. 웅족의 환웅족화로 곰은 천손족의 상징이 되었고, 곰이 신수의 이미지로 변화한 '맥'의 개념이 생겨났다. 선도문화의 요체인 '밝음'을 곰에 대입, '밝은동물(신수)'의 의미로 만든 글자가 '밝(貊)'이었고 이것이 후대에 '맥'으로 전음되었다. 이후 호족도 선도제천문화를 수용하면서 호족의 족칭이 '예'로 바뀌었는데, 예의 원음은 '새', 의미는 '새로움·새벽·밝음'이었다. 이에 매족과 예족을 함께 예맥족, 또는 맥족으로 부르게 되었다. 예맥족 또는 맥족은 선도제천문화를 공통분모로 하였기에 이러한 공통분모에 초점을 맞출경우 선도 제천문화의 핵심인 '한·환'을 따와 '한민족'으로도 부르게 되며, '예맥족(새밝족) = 맥족 = 한민족'이 형성이 된다. 현재도 종족적 의미를 강조할 경우 예맥족 또는 맥족, 민족의 정체성을 강조할 경우 한민족으로 부르고 있다. 기존의 선행연구는 대체로 북방 예맥족과 남방 한족으로 분리해왔지만, 예맥족이 곧 한족이다." 동북아고대역사학회 제 3 회 학술대회 "동북아문명과 백두산" ○ 일시 : 2020년 6월 13일 토요일 ○ 장소 : 국학원 ○ 주최·주관 : 동북아고대역사학회 ○ 후원 : (재)롯데장학재단·(사)국학원 사회 ㅣ 김용환 교수(충북대학교) 제 1주제 1910·1920년대 식민지조선 지식인들의 '백두산=단군발상지'론과 '만주=단군강역'론 발표 | 이명종 교수(강릉원주대학교) 제 2주제 동북아의 백산신앙과 백두산 - 土着性과 越境性 발표 | 김철수 교수(중원대학교) 제 3주제 백두산문명과 한민족의 형성 발표 | 정경희 교수(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 ※ 자료집 다운로드 동북아고대역사학회 홈페이지 www.dongbuk-a.kr 학회지 및 간행물 ⇒ 학술대회 자료집 (회원가입 필요, 무료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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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등록일
2020-07-31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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